소상은 초상으로부터 윤달을 계산치 않고 총 13개월 되는 기일, 즉 기년되는 날에 지내는 제사이다.
대상은 초상으로부터 윤달을 결산치 않고 25개월, 즉 만 2년에 마치는 것이며 차례로서는 두번째 기일에 행하는 제사이다.
담제는 대상을 지낸 뒤 한달을 가운데 두고 지내는 것으로, 죽음으로부터 27개월 되는 달 삼순 중 한달을 가리되 정일(丁日)이나 해일(亥日)을 기리어 지내는 제사이다.
철 따라 한해에 네 번 종묘(宗廟)에 지내던 제사였으나 현재는 지내지 않고 있다.
음력으로 다달이 초하루ㆍ보름 생일에 간단히 낮에 지내는 제사이며 정월 초하루날의 연시제(年始祭)와 팔월 추석에 지내는 절사(節祀)가 있다.
돌아가신 날 지내는 제사로, 오늘날 제사라고 불리우는 것이다.
시조(始祖)에서부터 모든 조상들의 묘소에 가서 지내는 제사로, 대개 한식(寒食)이나 시월 (十月)에 날짜를 정하여 지내고 있다.
이 밖에도 천신(薦神=薦新)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철에 따라 새로 나온 곡식으로 만든 음식이나 과일 등을 사당에 올리던 것을 말한다.
신위를 어느 쪽에 모셨든 영위를 모신 쪽이 北이되고 영위를 향해서 우측이 東이며 좌측이 西이다.
생선과 고기(肉類)를 함께 진설할 때는 생선은 東, 고기는 西이다. 따라서 三탕을 쓸 때 어탕이 東, 육탕이 西, 계탕은 중앙에 놓게 된다.
신위를 향해서 좌측이 항상 상위가 된다. 지방을 붙일 때 考位(아버지)를 왼편 즉 西쪽에 붙이는 이유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붉은색 과실은 동쪽, 흰색 과실은 서쪽에 진설하는 가문도 있다. 따라서 홍동백서로 진설하는 가문은 대추가 가장 우측, 밤이 좌측으로 진설한다.
음력으로 다달이 초하루ㆍ보름 생일에 간단히 낮에 지내는 제사이며 정월 초하루날의 연시제(年始祭)와 팔월 추석에 지내는 절사(節祀)가 있다.
포를 좌에, 식혜를 우에 놓는다.
참사자(參祀者)가 손을 씻은 다음 진설순서에 의해 제수를 진설하고 참사자가 배열해 선다.
지방이나 사진을 교의에 모신다.
신위께서 강림(降臨)하시어 음식을 드시도록 청하는 뜻으로 제주(祭主)를 위시하여 모든 참사자가 신위 앞에 선 다음 제주는 꿇어앉아 분향하고 잔이 차지않게 따른 술잔을 우집사 (右執事 = 대개 제주의 子姪이함)로부터 받아서 모사에 세 번으로 나누어 부은 후에 빈 잔은 우집사에게 건네주고 일어나서 재배한다.
참신은 강신을 마친 후에 제주 이하 일동이 일제히 신위를 향하여 재배한다. 신주(神主)를 모시고 올리는 제사인 경우에는 참신을 먼저 하고 지방(紙榜)인 경우에는 강신을 먼저 한다.
제주는 강신 때와 같이 꿇어앉아 분향한 후 좌집사로 부터 받은 잔에 우집사가 술을 가득히 부어주면 오른손으로 잔을 들어 모사에 조금씩 세번에 기울여 부은 뒤에 양손으로 받들어 집사에게 준다. 집사는 이를 받들어 먼저 고위(考位)앞에 올린다. 다음으로 비위 앞에 올리는 잔은 모사에 기울이지 아니하고 그대로 받아서 올리고 저를 고른 후에 재배한다.
축문 읽는 것을 독축이라 하며 초헌 후에 일동이 꿇어앉으면 제주옆에 앉은 축관이 천천히 크게 축문을 읽는다.
다 읽고나면 일동은 기립하여 재배한다. 독축은 초헌에 한한다.
둘째번 잔을 올리는 것을 아헌이라 하며 주부[주부는 재배가 아닌 사배(四拜)]가 올리는 것이 관례이나 제주 다음의 근친자가 초헌과 같은 순서에 따라 올릴 수도 있다.
아헌자 다음가는 근치자가 끝잔으로 올리는 것을 종헌이라고 하는데, 종헌자는 잔을 받아서 초헌 때와 같이 모사에 세번 기울였다가 올린다.
메 그릇 뚜껑을 열어 놓고 수저를 꽂는 것으로서 이때 수저 바닥이 동쪽(신위를 향해 선 제주의 오른편)으로 가게하여 꽂는다.
초헌자가 신위 앞에 꿇어앉아 우집사가 새로운 술잔에 술을 조금 따라주면 받아서 좌집사에게 준다.
좌집사는 이것을 받아, 종헌자가 종헌때 모사에 기울였기 때문에 차지 않은 잔에 세 번으로 나누어 첨작하고
재배한다. 첨작을 유식(侑食)이라고도 한다.
합문이란 참사자 일동이 강림하신 신위께서 진설한 제주 음식을 흠향 하시도록 한다는 뜻으로 방에서 나온 후 문을 닫는 것을 말하는데 대청에서 제사를 지내는 경우에는 뜰 아래로 내려와 조용히 기다린다.
개문이란 문을 여는 것을 말하는데 제주는 문을 열기전에 우선 기침을 세 번하고 난 후에 문을 열고 들어간다.
숭늉을 갱과 바꾸어 올린 다음 수저로 메를 조금씩 세 번 떠서 말아놓고 저(著)를 고르고 난 후에 참사자 일동은 잠시 읍(揖)한 자세로 있다가 제주의 기침 소리에 따라서 고개를 든다.
철시복반이란 숭늉그릇에 놓인 수저를 거둔 다음 메 그릇에 뚜껑을 닫는 것을 말한다.
참사자 일동은 재배한 다음 신주는 본래의 사당으로 모시고 지방과 축문은 불사른다. 즉 신위와 작별을 뜻하는 것이다.
모든 제수를 물리는 것을 철상이라 하며 제수는 뒤쪽에서부터 물린다.
음복이란 조상께서 주시는 복된 음식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제사가 끝나는 대로 참사자와 가족이 모여서 함께 먹을 뿐만 아니라 이웃에 나누어주기도 하고 또 이웃 어른들을 모셔다가 대접하기도 한다.
여자의 경우 유인(孺人) 다음에는 본관과 성씨를 쓰고 아내의 제사인 경우 자식이 있어도 남편이 제주(祭主)가 되며 자식의 경우는 손자가 있어도 아버지가 제주가 된다. 만약 재취(再娶)로 인하여 지방이 삼위(三位)일 경우는 왼쪽에 남자의 지방을 약간 높게 붙이고 중간에 본비의 지방 오른쪽에 재취비의 지방을 붙인다.
시제지방을 쓸 때는 몸을 청결하게 한다.
고(考)는 부(父)와 동일한 뜻으로 생전에는 父라 하나 사후에는 考라하며 비(비)는 모와 같아 생전에는 母라 하고 사후에는 비(비)라 한다.
남자의 지방을 쓸 때 벼슬이 없으면 學生으로 쓰고 벼슬이 양천부원군(陽川府院郡)이라면 그 관직을 그대로 쓴다.
따라서 그 배위(配位ㆍ아내)도 유인(孺人)대신 정경부인(貞敬夫人)이라고 쓴다.
모관부군(某官府君)은 벼슬이 있을 경우 해당 관직을 그대로 쓰고 벼슬이 없으면 학생부군(學生府君)이라 쓴다.
여자의 경우 모봉(某封)은 남편의 직품에 따라 一品은 정경부인(貞敬夫人), 二品은 정부인(貞夫人), 三品은 숙부인(淑夫人), 四品은 숙인(淑人), 五·六品은 공인(恭人) 벼슬이 없으면 유인(孺人)이라 쓴다.
여자의 모관모씨(某貫某氏)는 본관 성씨를 쓴다.
한글의 경우도 한자 지방에 준하여 쓴다.
顯 : 일반적으로 (나타날 현)이라 읽지만 지방[紙榜]에서 顯자는 「높을 현」(高也)으로 읽어야 한다. [書經]에서 天有顯道라 했다.
亡 : 처(妻)는 顯子를 쓰지않고 망실(亡室)이라 쓰며 동생(同生)은 顯자를 고쳐 망(亡)자로 하고 府君을 쓰지 않는다.
學生 : 처사(處士)로 쓰는 가문도 있다.
孺人 : 생전에 벼슬을 하지 못한 사람 아내의 신주(神主)나 명정(銘禎)에 쓰는 존칭.